한강, 5·18 비하 논란에 “그냥 지나가면 안 되는 신호”
소설가 한강 씨가 전쟁과 분열이 깊어지는 시대의 핵심 문제로 ‘혐오’를 꼽았다. 한 씨는 15일 현지 시각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 현장에서 한국 취재진과 만나 “혐오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문제라는 데 우리가 뜻을 같이한다면, 그 안에 희망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이번 기자회견은 한 씨가 2024년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뒤 처음 가진 공개 기자회견이다. 그는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한국 사회에서도 갈등과 단절이 심해지는 현실에 대한 질문을 받고 “혐오라는 문제는 한국 사회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강렬하게 대두되고 있다”고 답했다.
한 씨는 혐오를 극복할 방법을 찾는 일이 지금 세대의 중요한 과제라고 했다. 그는 “이 혐오의 시대에서 어떻게 방향을 틀어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단순히 갈등을 비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혐오를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는 공동의 감각이 변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최근 논란이 된 배재고 야구부의 5·18 비하 사태에 대해서도 한 씨는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교육 현장에 있는 교사 친구들이 이 문제를 두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며 “기성세대로서 우리가 어떻게 하다가 실패하게 됐는지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한 씨는 해당 사건을 단순한 일회성 논란으로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충격과 놀라움 속에서 그냥 지나가면 안 된다”며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을 때 그것을 잘 포착하고, 다 같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했다. 이어 “충격이 또 다른 충격을 덮고 지나가는 방식은 좋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날 회견에서는 한국어와 문학의 의미에 관한 이야기도 비중 있게 다뤄졌다. 한 씨는 언어를 경쟁력이나 우열의 기준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우리는 태어나 모국어를 배우고, 그 언어를 통해 세계를 만나고 자신을 만들어간다”며 “언어는 우리가 존재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한 씨는 문학과 연극, 노래와 영화가 모두 언어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했다. 올해 아비뇽 페스티벌이 한국어를 공식 초청 언어로 선정한 데 대해서는 “해마다 하나의 언어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것은 그 언어가 가진 음악적이고 근원적인 성격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언어가 인간의 가장 깊은 감정과 경험을 담는 도구라고도 했다. “언어를 통해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고, 사랑하고, 고백하고, 진실을 말하고, 비명을 지르기도 한다”며 “언어로 할 수 있는 많은 일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이 문학 아닐까”라고 했다.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의 변화에 대해서는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외부 활동에 부담이 있느냐는 질문에 “솔직히 부담스럽다”고 답하면서도 “시간이 지나면 관심도 줄고, 해마다 새 수상자가 나오니 마음이 조금씩 가벼워질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특별히 제 삶이 달라진 것은 없고 별다르지 않게 살고 있다”고 했다.

한 씨는 한국과 프랑스 수교 140주년을 맞아 한국어가 아비뇽 페스티벌 공식 초청 언어로 선정되면서 행사에 초청됐다. 아비뇽 교황궁 ‘명예의 뜰’에서는 그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낭독 행사가 열렸고, 프랑스 배우 이자벨 위페르와 한국 배우 이혜영이 낭독자로 참여했다. 이탈리아 연출가 다리아 데플로리안은 이 작품을 바탕으로 한 무대를 선보였다.
자신의 작품이 다루는 제주 4·3과 5·18 등 역사적 상처에 대해서도 한 씨는 보편성을 강조했다. 그는 “외국 독자들이 사전 지식이 없더라도 작품을 따라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것”이라며 “그 사건들은 한국만의 특수한 일이 아니라 인류가 오랜 시간 반복해서 경험해 온 비극과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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